홍 윤숙
지난 여름, 내가
떠도는 한 점 구름으로
지새던 만리 이역의 들에
사막의 고독한 혼처럼 피어
발이 시린 나그네의 길을 막던
라벤다의 들에도 지금 가을 이겠지.
코끝에 스며 오는 마른 약쑥 냄새
기억의 벌판에
한 덩어리 영혼처럼 무리져 오는
보랏배耙 들국화 점점이 피는
내 나라 산야에도 지금은 가을
흐느끼며 가슴 떨며
여윈 볼 쓸쓸히
성긴 빗발 앞세우고
바람 앞세우고
추억의 수레 끌며
종일을 먼 길에
네가 오누나.
산머루 검게 익어 떨어지고
가랑잎 비에 젖어 썩는 숲길에
우리들의 여름날 묻으며 묻으며
익숙한 몸짓
언제나 말보다 더 확실히 말하는
분명한 걸음으로 네가 오누나.
그저 그런 거라고
슬퍼하지 말라고
삶에도 사랑에도 가을이 오고
가일밭에 빛나는 과일도
잠시 춤만하다.
이윽고 북풍에 떨어져 가는
이별과 침묵의 완성이라고
빗발로 가르치고
바람으로 일러 주며 네가 오누나.
그럼에도 어찌할까. 나를
물 같은 추럭에도 가시처럼
아픈 살을
이 나이에도 철없이 신열 올라
그리운 배고픔에 살이 내리는
가을산 눈부심을 어찌할까.
'한국인이 애송하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인의 애송시]G. 밴더빌트, 동화 (0) | 2010.08.12 |
---|---|
[한국의 시]박용철, 떠나가는 배 (0) | 2010.08.11 |
[한국의 시]윤곤강, 입추(立秋) (0) | 2010.08.09 |
[한국의 명시]윤동주, 별헤는 밤 (0) | 2010.08.09 |
[한국인의 애송시]G.바이런, 우리 둘이 헤어지던 ... (0) | 2010.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