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이후
박 재 화
그때 이후
나는 잘 잊는 버릇이 생겼어요
안경을 잊거나 넥타이를 잊고
온밤을 쏟아넣은 옆서의
수신처를 잊는가 하면
市界 밖의 내 어설픈 집, 주소를 잊고
폭설에도 아주 잠들지 않는 완행버스 정류장
작은 불빛을 삼킨 바람의 꼬리도 잊고
온통 잊어 버려요
누가 내게 던진 모멸도 이제는 잊고
그러면서 잊을 수는 없다는 다짐도 잊고
모두모두 잊는 버릇이 생겼어요
알약은 먼지를 털 때에나 발견되고
책갈피엔 곱게 바랜 젊은 날의 함성,
오 그러나 잊을 수 없어요
해 지기 전 심은 그날 분노의 씨앗
아니 분노를 덮은 사랑의 씨앗.
[출 처]황토시동인 네번째작품집-배영사 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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