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애송하는 詩

[한국의 시]김연아, 천사가 지나간다

朴昌鎬 2011. 7. 12. 21:51

 

천사가 지나간다 

 

 

                                                                     김연아

 

 

 

 

                                                       새틴바우어 새의 정원에는

                                                                          시의 행처럼

                                      숲에서 가져온 물건들이 배열되어 있다 

 

 

 

  그의 날개 색은 바꿀 수 없어도 구애를 위한

  그 정원의 전시물은 끝없이 바뀐다

 

  저는 블루베리 열매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표백된 조개껍질

  딱정벌레의 무지개빛 날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와 결혼해주세요

 

  구애하는 새틴바우어 새처럼 나는 낱말을 배열한다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천사의 날개에서 떨어진 눈(目) 같은 것은 제외하고.

 

  나는 사월이 여신처럼 올라오는 언덕에 서서

  지나간 사랑의 마지막 감촉 같은 것을 되새겼다

  개울가 버드나무 아래에서의 한낮

  입술에 닿는 따뜻한 비,

  입속에서 자꾸 맴도는 금빛 단어들

 

  오늘, 내 혀는 투명한 실로 꿰매져 있고

  오늘, 내 눈물에선 짠맛이나

  오늘, 내가 물푸레나무가 되어 너의 옆에 앉는다면

  너는 헤엄치는 새 같아질 거야

 

  입안에 태양을 머금고 그는 세상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끝없는 응시로부터 나오는 영감 같은 것

  내가 느낌으로 충만한 하얀 종이와 마주할 때

  먼 곳에서 온 낱말들이 나에게 닿을 때

  

  난초 잎이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을 뿐

  그가 오거나 멀어져 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를 이름 없이 알아본다

  그는 묵언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 소리는 흔들리고 머뭇거리는 환영 같아

  새들이 휘저어 놓은 공기 속에 빛들이 떠다니는 소리가 들려

 

  모든 색깔의 스펙트럼을 가진 하얀 유령처럼

  그는 하늘의 문체를 흉내 내어 꽃들을 만들어내고

  사물들의 이름을 바꾼다

  누군가 슬쩍 끼어들어 써놓은 문장 같은 것

  내가 쓰고자 했으나 쓰지 못했던 문장들

 

  유리창을 스치는 굴뚝새 그림자처럼

  말과 침묵 사이, 천사가 지나가는가

  내 사랑이 서 있을 법한 자리에

  작은 낱말이 하나 서 있다

  오랜 망설임 끝에 다시 받아들여지는 연인처럼

 

 

 

 

 

 

계간 『시와 지역』 2010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