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저녁 창가에 도착한 박새에게
이성렬
멀리 서성이는 저녁의 기척들과
모퉁이의 귀를 부르는 불빛
온몸의 털을 곤두세운 그림자들의
종종걸음을 따라잡는 어둠의 발자국과
황혼 속으로 흩어지는 굴뚝들의 온기
지난 폐허들을 처마에 걸어놓은 채
대기는 나의 검은 손금을 회수한다
기억하느냐, 차가운 빗줄기 속으로
떠난 길의 외로운 고백을
메아리의 침묵에 익숙한 나의 목소리는
소식처럼 먼 항로를 바라본다
언덕 너머 하모니카 소리의 습기를
품은 들꽃들에게 너는 물어보아라
우연한 빗방울과 잊혀진 서약들, 겹겹의
옷을 입고 찾아든 나의 유물들에 대하여
헝클어진 숲의 목쉰 노래들을 보내며
나는 창을 닫기에도 힘겹구나
聖금요일에는 상복을 입은 아이의
깊은 눈빛으로 세상을 건너야겠지
이 밤의 울음과 속삭임을 모른 체하며
소멸의 기억에 빚지어 이제 작별한다
지나간 강물과 다시 만날 기약하듯이
계간 『시와 경계』 2011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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