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엉 울며 동네 한 바퀴
공광규
지난 겨울 폭설에 잎이 하얗게 질려 말라죽은
시골집 뒤꼍 대밭이 버려진 독거노인 머리 같이 서럽다
저렇게 꼿꼿한 것을 부드러운 것이 이기는구나
평생 아는 것이 뱀 구멍과 마누라 거시기 구멍뿐이었다는
뱀통 메고 장화 신고 산기슭 떠돌다 벼락 맞아 죽은
잡목이 정수리에 박혀 있는 땅꾼의 버려진 산소가 쓸쓸하다
친구도 친구 자식도 다시는 돌아올 일이 없을 것 같아
울먹해지는 이민 간 친구의 홀아버지는 부엌과 헛간에
소나무와 참나무 장작을 반듯하게 쌓아 놓자마자
병을 얻어 읍내에서 하급 공무원 하는 큰아들 집으로 가고
마루에는 바람이 흙먼지와 가랑잎을 몰고 다니며 논다
개울 건너 경순네 빨간 함석지붕은 헐려 보이지 않고
지초실 종기네 옛집도 눈이 흐려 분간할 수가 없다
시골 교회 사모님은 도시로 떠나고 싶다는 소문이 돌고
면 소재지에 젊은 여자의 팔 할이 다방 아가씨란다
그중에 하나는 겉늙은 내 시골 동창과 살다가 도망쳤고
방앗간네는 며느리 셋을 다방 아가씨로 맞았는데 모두 나갔단다
소고개 넘어 스님 하나에 보살이 셋이나 되는
된장 고추장을 많이 담아 장독이 많은 새 절 법당에는
벌써 죽은 시골 동창의 사진이 옛날처럼 웃고 있다
작년 가을 고추밭 두렁에서 식구처럼 받아왔다는
집벌통에 꿀벌이 분주한 재당숙네 마당을 지나
오십 초반에 폐가 무너진 아버지가 마루 끝에 쪼그려 앉아
쿨럭쿨럭 기침하다 뱉어 낸 가래침을 닭들이 몰려와
맛있게 주워 먹던 옛집 마당에 파도처럼 쓰러진 망초꽃대를
밟아보다가 쥐똥과 새똥이 범벅된 헌 마루에 앉아서
바라보다가 나도 도라지 밭가에 누운 아버지 나이가 되려면
십년도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다가 아직 어린 아이들을
생각하다가 이내 내가 서러워져 마음이 엉엉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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