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애송하는 詩

[한국의 시]이경임, 무엇인가가

朴昌鎬 2011. 8. 13. 12:59

 

 

무엇인가가

                                             이경임

 

  언제부터인가 한밤중에
  잠이 깨는 습관이 생겼다
  그때마다 가려움증 환자처럼
  잠의 언저리를 긁으며
  밀려오는 환각

  진흙이 연꽃을 꾸역꾸역 밀어 올리듯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환각   

  무엇인가가 나의 머리통에 빨대를 꽂고
  나의 뇌수를 들이키고 있는 것만 같은 환각

  나의 혼과 꿈이 블랙홀 같은 그 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만 같은 환각

  새벽바다처럼 출렁거렸던 머리통이
  메마른 저수지의 금 간 바닥처럼
  황량하게 비워지고 있다는 환각

  그 무엇인가가 나의 머리통에서 빨대를 빼고
  나를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린 후
  차갑게 웃고 있는 것만 같은 환각

  달력인가 들여다보면 연인 같고
  죽음인가 들여다보면 기계 같고
  그 무엇인가는 얼굴도 없고 목소리도 없다

  무지개인가 들여다보면 분노 같고
  돈인가 들여다보면 권태 같고
  신인가 들여다보면 벌레 같고
  그 무엇인가는 체취도 없고 그림자도 없다

  어떤 날엔 쭈그러진 나의 머리통들이
  쓰레기더미처럼 쌓여 있는 거리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나를 본다

  버려진 나의 머리통들을
  배고픈 개처럼 핥아먹고 있는
  노파가 된 나를 훔쳐보기도 하고
  나의 머리통들을 인형처럼 부둥켜안고
  악동처럼 천사처럼 신나게 놀고 있는
  무수한 나들을 바라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