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
고형렬
나는 지금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
이 문장은 성립하지 않고 시상이 전개되지 않는다
나는 지금 에르덴 조 사원에 없다는 말은
상상할 수 없는 걸 상상하므로 항상 제기되는 문제다
그러나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
증명할 길이 없지만 나는 지금 에르덴조 사원에 있다
에르덴 조 사원에서 에르덴조 사원을 생각하거나
나는 지금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생각하려다가 생각을 못하고 놓친다
그들은 먼 나의 생각 사이를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문장 성립은 둘째 치고 나는 늘 이렇다
나는 이 사유 자체의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 는 말이 꼭 성립돼야 하는가
길을 가면서, 나는 혼자, 그 생각에 골몰한다
분명하게 말해서 나는 지금
에르덴조 사원에 있는 것처럼 에르덴 조 사원에 있다
그래 에르덴조 사원에 내가 있다는 것은
나에게 에르덴 조 사원이 있다는 것은 에르덴 조 사원이
없다는 것과 동급의 문제로 제기될 수 있다
문제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문제가 발생한다
허나 에르덴조 사원에 없는 내가 너무나 고독하다
음률을 맞추며 고통스러워하는 자의 행보
왜 나는 왜 에르덴조 사원에 없는 나를 생각하고 있는가
나는 이 문장을 떠올리면 슬퍼진다
에르덴조 사원에 없는 나는 어디를 헤매고 있는지
그런데 그대여 왜 그대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는 건가
나는 지금, 그때, 에르덴조 사원에 머물고 있어라
나는 정처가 없어서 나무처럼 외로워 보인다
나 없는 사막 입구의 산처럼 나는 하늘을 쳐다본다
에르덴조 사원의 하늘에 나타난 눈부신 구름처럼
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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