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애송하는 詩

[한국의 시]이윤학, 내가 당신 곁을 떠도는 영혼이었듯이

朴昌鎬 2011. 7. 1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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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 곁을 떠도는 영혼이었듯이

                                                            이윤학

  

서로의 머리에 삶은 계란을 깨먹던 시절
우리 곁에서 탱자 꽃들이
깔깔거리며 피어났고
우리도 깔깔거리며
우리의 철길을 걸었다
 
하늘의 거울에 담겼던 우리
거울의 하늘에 담겼던 우리
웃음이 유일한 호칭이었던 날들
우리는 거기에서
서로의 심장을 해부해 보였다
닮은꼴을 찾기 위해
서로의 실핏줄 하나까지 확인했었다
 
우리의 등은 납작해진 기숙사 매트리스
빈 집의 적요를 안고
수많은 만(灣)들을 누볐다
바닥의 차가움에 정박한 우리
해국(海菊)이 피어난 백사장에 도착한 우리
햇볕이 달군 백사장을 굴러다녔다
갓 피어난 해국(海菊)에게서
잊히지 않는 기억을 선물 받았다
 
고운 모래를 내뱉으며 깨어난 우리
날은 어둡고 빈틈없이
어둡고 발작은 멈추지 않았다
 
허망을 오르가즘으로 바꾼 우리
빈 집 방 한 칸 지붕이 날아간
빈 집 방 한 칸 별들을 불러 모았다
유리가루 버석거리는 소리
흩어지는 입김을 멈출 수 없었다
 
내가 당신 곁을 떠도는 영혼이었듯이
당신이 내 곁을 떠도는 영혼이었듯이
빙평선이 둘러쳐진 우리 곁에서
하염없이 떨고 있는 믿음 약한 영혼들
우리가 곁이라 믿었던 날들은
수많은 자갈 아래로 꺼져 내렸다
 
서로의 머리에 계란을 깨먹던 시절
서로의 구부러진 터널을 빠져나왔다
까마득한 눈빛을 담고 있는 철길의 왕복터널
양방향 끝을 유심히 담고 있는 볼록거울
내가 당신 곁을 떠도는 영혼이었듯이
당신이 내 곁을 떠도는 영혼이었듯이

  

 

 

 

 

계간 『시산맥』 2011년 여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