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신석정, 임께서 부르시면 임께서 부르시면 신 석정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호수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포곤히 풀린 봄 하늘 아래 굽이굽이 하늘가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가오리.. 한국인이 애송하는 詩 2010.07.22
[한국의 시]정훈, 밀고끌고 밀고 끌고 정 훈(1911~ ) 날랑 앞에서 끌께 엄닐랑 뒤에서 미셔요. 한밭 사십 리 길 쉬엄쉬엄 가셔요. 밀다가 지치시면 손만 얹고 오셔요. 걱정 말고 오셔요. 발소리만 내셔요. 엄니만 따라오면 힘이 절로 난대요. 마늘 팔고 갈 제면 콧노래도 부를께요. 형은 총을 들고 저는 손수레의 채를 잡고 형이 올 때.. 한국인이 애송하는 詩 2010.07.08
[한국의 시]조지훈, 봉황수 봉황수(鳳凰愁) 조 지훈(1920~1068) 벌레 먹은 두리 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 소리 날러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던 거미줄 친 옥좌(玉座) 위엔 여의주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 한국인이 애송하는 詩 2010.07.08
[한국의 시]김광섭, 생의 감각 생의 감각 김광섭 여명의 종이 울린다. 새벽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 깨진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른 빛은 장마에 넘쳐 흐.. 한국인이 애송하는 詩 2010.07.08
[한국의 시]윤동주, 참회록 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줄에 줄이자 ―만이십사년일개월(滿二十四年一個月)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줄의 참.. 한국인이 애송하는 詩 2010.07.08
[한국의 시]노천명, 사슴 사 슴 노 천명(1913~1944)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朴昌鎬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 한국인이 애송하는 詩 2010.07.08
[한국의 명시]김광섭, 성북동비둘기 성북동 비둘기 김 광섭(1905~1977)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한국인이 애송하는 詩 2010.07.02
[한국의 명시]김광균, 와사등 와사등 김광균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 여름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高層) 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 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 한국인이 애송하는 詩 2010.07.02
[한국인의 애송시] G. K.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 미라보 다리 G. K. 아폴리네르(1880∼1918)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이 흐른다. 우리들의 사랑도 괴로움이 가면 기쁨이 온다는 걸 그래도 생각해 볼까.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손에 손을 잡고 얼굴을 맞대어 우리들의 팔이 맺는 다리 아래 영원한 시선의 거친 물결이 흐르는.. 한국인이 애송하는 詩 2010.06.11
[한국인의 애송시]W.B.예이츠, 이니스프리의 호도... 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 W. B. 예이츠(1865∼1939) 나 인제 일어나 가리, 내 고향 이니스프리로 돌아가리 거기 외 엮어 진흙 바른 오막살이 집 짓고 아흡 이랑 콩을 심고, 꿀벌통 하나 두고 벌 떼 잉잉거리는 숲속에 홀로 살리 그리고 거기서 얼마쯤의 평화를 누리리, 평화는 천천히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 한국인이 애송하는 詩 2010.06.10